안산순례길2019

순례에 부쳐



그린피그
“나의 슬픔에 대하여 설명한다. 나의 슬픔이 얼마나 혼돈스러운 것인지, 종잡을 수 없는 것인지에 대하여. 그래서 나의 슬픔이 흔히 말해지는, 그러니까 정신분석학이 말하는 그런 슬픔으로 설명될 수 없는 것이라는 걸. 정신분석학적인 슬픔은 결국 시간의 흐름을 따르고, 변증법적으로 느슨해지고, 조금씩 사라지면서, 마침내 “화해에 이른다.” 하지만 나의 슬픔은 그렇게 즉시 정화되지 않는다. 나의 슬픔은, 그와는 반대로, 물러가지 않는다.”

오 년째, 봄이 되면 안산을 걷는다. 봄이 되어서야 겨우 안산을 걷는다. 내내 잊고 지내다가 봄이 되어서야 세월호를 기억하려는 것이 아닌가, 참사를 기억하자고 할 자격이 있나, 스스로를 돌아보는 봄을 몇 년째 지내고 있다. 하지만 그 몇 년이 지나는 동안 아직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변한 것은 시간과 안산 곳곳의 모습들뿐이다. 그런데도 아직도, 아직도 세월호냐,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매년 안산순례길을 준비 할 때마다 우리는 다시 분노하기도, 무기력해지 기도 한다. “우리의 사회가 안고 있는 패악은 그 사회가 슬픔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희생자가 살던 연립은 37층의 아파트로 변하고 있다. 기억교실은 단원고에서 과거 안산교육지원청의 2층짜리 건물로, 그리고 다시 옆 건물 4층짜리 건물로 옮겼다. 화랑유원지에 있던 분향소는 사라졌고, 생명안전공원이 들어설 것이다. 안산을 걸으며 우리는 과거를 회상하며 현재를 목격할 것이고, 다시 오늘을 기억할것이다.

“망각이란 없다. 이제는 그 어떤 소리 없는 것이 우리 안에서 점점 자리를 잡아 가고 있을 뿐이다.”
롤랑 바르트


심보선
‘동어반복’이란 말은 주로 부정적인 뉘앙스로 사용됩니다. 했던 말을 반복하는 것은 의사소통에서 재미도 없고 효과도 없습니다. 하지만 동어반복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유일한 의사소통의 방식이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바로 망각의 상황에서 입니다. 무능한 권력에 의해 무고한 희생이 벌어진 사건, 사건을 통해 발화된 말과 촉발된 행동들의 기억과 무게가 옅어질 때, 우리는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동어반복을 통해서 스스로에게 타인에게 상기시켜야 합니다. 사라진 이들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고, 진실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고, 안전사회는 아직 구현되지 않았다고 말입니다.
5년차 <안산순례길>입니다. 예술가들은 시민들과 동료들과 함께 안산을 돌고 또 돌았습니다. 빠지지 않고 방문하던 곳이 있었습니다. 분향소가 있던 화랑유원지였습니다. 그러나 분향소가 철거되고 생명안전공원부지가 결정되면서 화랑유원지는 방문하기가 참으로 난감한 곳이 되었습니다. 생명안전공원의 설립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들의 절대적 과제가 되었습니다. 광장과 분향소와 존치교실이 하나, 둘 사라지면서, 생명안전공원은 희생된 이들과 가족들의 마지막 거처, 진상규명의 마지막 거점, 안전사회 건설의 마지막 약속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생명안전공원을 납골당이라고, 혐오시설이라고 바라봅니다. 희생자 가족들에게 그토록 성스러운 곳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불편과 불쾌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잊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그곳을 방문한다면 또 다른 불편과 불쾌를 야기할까, 그러다 생명안전공원 설립 자체가 위험에 빠지는 것은 아닐까 염려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 같은 현실에서 동어반복은 망각의 예방이 아니라 망각을 강요하는 현실에 대한 저항이 되어버립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이 이루어지고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지지한 정치인이 대통령이 되면서 망각을 강요하는 현실이 바뀌리라 기대를 했습니다. 망각을 강요하는 현실은 억압적이고 비민주적인 사회라 생각했고, 그 사회가 바뀌면 망각도 멈추리라 희망했습니다. 하지만 망각을 강요하는 현실은 단순히 억압적이고 비민주적인 사회가 아니었습니다. 망각을 강요하는 현실은 너무나 평온하고 정상적이고 심지어 근사한 현실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더 비싼 아파트에 사는 현실, 아이들이 더 좋은 학교에 다니고 중산층의 소득이 더 늘어나는 현실이었습니다. 망각을 강요하는 것은 부패한 정권이 아니라 성장하고 발전하는 세상이었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기억과 진상규명을 위한 싸움에 관한 한, ‘동어반복’이야말로 가장 새로운 말과 행동이며, 시대착오적인 것이야말로 가장 미래지향적이라는 것이라는 사실을 아프게 깨닫습니다. <안산순례길>의 행보는 다시 한 번 이어집니다. 같은 사람들과 같은 도시를 맴돌고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우리의 행보는 매번 새롭습니다. 우리의 동어반복이 진정 낡고 뻔해질 날이 오기를 고대합니다. 더 이상 진실이란 말이 불편하고 불쾌하게 들리지 않을 날이 오기를 기대합니다. 그때까지 우리는 시대착오적이기 그지없는 이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아쿠마노시루시x 제로랩
“누구든 <반입프로젝트>를 해도 된다” 고 아쿠마노시루시의 대표 기구치 노리유키는 늘상 말하곤 했습니다. 이번에 안산순례길개척위원회 여러분이 기획한 새로운 반입프로젝트는 또 어디로 향하게 될까요. 저희 역시 지켜보고 싶고, 여러분들의 행동에 미약하나마 힘이 되었으면 합니다. 예술을 통해 의사를 표현하고, 사회를 향해 질문을 던지는 의미, 그리고 그 행동에서 발생할 가능성을 믿습니다.


언메이크랩
딸꾹질이 멈추지 않는 이유/ 딸꾹질을 멈추는 법.
생명안전공원 부지로 예정되어 있는 화랑유원지 안쪽 터에는 노란 리본이 모여 있었다. 누군가 “또다시 봄, 생명의 봄”이라는 문구를 적어놓았다. 많은 문구 중에 유독 눈에 들어왔던 문장이었다. 생명이 피는 봄에 우리는 사회적 참사로 떠난 이들을 기억한다. 생명과 계절은 계속 순환하지만, 참사의 원인과 이유를 알 수 없는 현실 위에 우리의 삶은 어딘가에서 무력하게 정체된 듯하다. 그래서 몸을 조금이라도 움직이고 무감각해지지 않기 위해 걷는다. 추모와 애도의 걸음으로 시작한 순례길은 기억의 걸음이 되고 이제 익숙한 삶의 방식에 제기하는 복잡한 질문의 걸음이 되었다. 이제 이 걸음은 세월호는 기억해야 할 역사가 아니라 계속 마주해야 할 현실임을 상기시킨다.
그것은 늘 몸속에 잠재되어 있다가 어느 순간 촉발하는 것 같은 ‘딸꾹질’ 같다. 딸꾹질은 호흡할 때 사용하는 근육이 갑자기 수축해 성대로 들어오는 공기가 막힘으로써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는 갑작스러운 자극, 흥분, 놀람으로 촉발되기도 한다. 또한 일시적인 몸과 호흡의 고장 상태이기도 하고 역으로 그 균형을 맞추기 위한 조정의 순간이기도 하다. 세월호는 일시적인 재난, 기억해야 할 사건 이상이다. 세월호로 우리의 감각은 더 많은 국가적, 사회적, 문화적 갈등과 모순을 불편하게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들은 끊임없이 딸꾹질을 유발한다. 놀람에서 시작된 딸꾹질은 이제 우리가 사회와 자신에게 보내는 반응이자 감각의 신호이다. 아마 우리는 이 딸꾹질을 멈출 수 없을 것이다. 마주하기, 그리고 머리의 생각을 몸의 감각으로 더 전환하기 위해, 올해도 멈추지 않는 딸꾹질과 함께 걷는다.
언메이크랩은 안산과 외부의 풍경, 마주한 현실에서 길어낸 여러 단서들을 토대삼아 지시문을 만들어 순례자들에게 나누어준다. 순례자들은 걷는 도중, 지시문에 묘사된 상황을 마주하게 되면 딸꾹질을 한다. 물론 그것은 인위적 딸꾹질이다. 그러나 이 사소한 의성-의태어는 이 걸음이 몸 안에 기억되는 순간이 된다. 혹은 잊지 않고 현실을 계속 마주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소리이자 몸짓이 되기도 한다. 다른 한편에는 팔의 가속도를 센싱하는 장치를 손에 장착한 퍼포머가 순례자들과 함께 걷는다. 걸음과 함께 율동하는 팔의 움직임에 따라 장치 속 소리 시스템은 딸꾹질을 지속적으로 발생시킨다. 이것이 딸꾹질을 멈추는 방법은 간단하다. 팔을 몸에 붙이고 움직이지 않으면 된다. 이 부자연스러운 속박...아마도 이렇게 5년을 걸어왔을 것이다. 당연한, 자연스러운 소리를, 몸짓을 속으로 삼키며.


윤한솔
처음. 시작.
매년 <안산순례길>을 시작할 때면 공원 어딘가에 처박힌 위령탑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처음 <안산순례길>을 시작했을 때, 예술이 무엇을 할 수 있나, 라는 무기력한 질문을 극복하고 싶었다. 게으른 몸은 기억을 거부한다. 시간은 망각의 편이다.
기억의 자격.
<안산순례길> 다섯 번째. 매년 5월, 슬픔의 권리를, 잊지 않는 법을, 그리고 근원을 헤아릴 시간을 주지 않는 절박함을 6시간의 순례 동안 물어왔다. 우리는 사회적 재난에 노출되어 있고 동시에 공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프게 인정해야 했고, 스스로 가해자임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올해는 스스로 묻는다. 기억의 자격을. 기억의 선언이 아니라 자격을.
안산에서의 한걸음 한걸음은 시간의 진공상태.
어느 시간에도 속하지 않고 안산의 실체를 걸어내는 힘. 시간의 진공상태를 걸어내는 힘은 참사를 불러온 인간 원형에 내재된, 불변의 속성을 거부하고 이 속성의 인과적 결과에 속박된 채로 예정된 미래를 맞이하는 것을 거부한다. 예정된 미래를 피하는 길은 인과율의 고리를 끊어버리는 것. 즉 과거의 해체에 달려있다. 당연하다고, 피할 수도 거부할 수도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헤집어 하나하나 다시, 다시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 ‘힘’은 안산을 걷는 지금, 여기에 있을 것이다. 비극의 끝에서 어느 시간대에도 속해 있지 않은 참사의 도시를 걸어가는 힘. 비극을 부정하지 않는 힘. 그 힘은 당장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안산의 구석구석, 어깨를 스치며 느슨한 거리를 두고 함께 걷는 시간은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상상하게 하는 ‘힘’이 있다. 그 ‘힘’은 과거의 참사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채울 수 없는 빈자리를 걷고 있는 지금, 여기를 말하는 ‘힘’이다.


잣 프로젝트
불과 5년 동안 안산은 많은 것들이 변했습니다. 안산뿐 아닐 것입니다. 갈색의 낮은 연립주택단지들이 서있는 곳이 무너지고 공사장 바리케이드가 세워지고 이내 고층의 아파트들이 들어서면서 하늘을 가렸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살 수 있는 사람과 더 이상 살 수 없는 사람들이 나뉘어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지난해 부평에서 작업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거주 지역이 재개발이 되어가면서, 혼자 사는 노인분들만 마지막 재개발 지역인 영단 주택(일제시대에 지어진 주택단지) 에 모여 사시는 것을 봤습니다. 이제는 용산참사 당시의 현장 영상을 쉽게 어디서든 접할 수 있는데 그것이 너무 참혹해 오히려 비현실적이게 느껴집니다. 물 대포가 쏟아지고 온몸이 부서지는 공권력을 행사해도 그들은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누군가는 이곳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자리가 아직도 남겨져 있는 거 같습니다. 아니 내 마음에 그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있다. 나는 왜 안산에 있을까. 어떤 시간을 부여잡고 내 몸을 바닥에 지탱하고 서있는 것일까. 그리고 어떤 힘으로 안산을 걸어가고 있는 것일까. 질문들이 입 안 가득 맴돌곤 합니다.

“죽은 사람과 산 사람 사이에 의례적인 관계가 지속된다는 것은 죽은 사람이 여전히 사회의 구성원임을 뜻한다. 사회는 산 자들로만 이루어진 게 아니다. 죽은 자들 역시 사회 안에 자리를 가지고 있다.”
[사람, 장소, 환대] 김현경

어쩌면 아이들의 흔적과 장소가 점점 사라지는 안산에서 걷고 있는 행위가 사라지지 않을 ‘사람의 자리’를 묻고 있는 시간들이라 생각이 듭니다. 흘러가는 시간 속 매해 검은 우산을 들고 되돌릴 수는 없으나 지속적으로 되물을 수 있는 힘을 획득하고자 합니다.

“희망이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길이 되는 것이다.”
[희망], 루쉰


고주영
처음을 떠올린다. 2014년 초, 태어나서 처음으로 안산이라는 도시를 찾아왔다. 도시농업, 적정기술, 환경운동 등, 새로운 공동체를 위해 애쓰는 안산의 시민들과 함께 사흘 간만 세워졌다가 사라지는 ‘독립국가’를 만들려고 했다. 그 만남은 끝내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중도에 끝이 났다. 4월 16일이었다.
2014년 말, 다시 안산을 찾았다. 진도를 출발한 버스가 우리를 단원고 앞에 내려주었다. 아직도 생생한 교실이었다. 이곳저곳에서 어머님들, 아버님들을 스쳐 지났지만, 말조차 건네기가 두려웠다. 죄송했다.
2015년 늦은 겨울, 혹은 이른 봄. 고잔동과는 또 다른 느낌의 안산역, 초지역을 시작으로 안산을 두 발로 걷기 시작했다. 일부러 먼 곳을 걸었던 것 같다. 세월호라는 사건을 도시의 역사, 근대화의 역사로 ‘읽어내려고’ 했다. 오열보다는 냉철하게 각성하는 길이 되었으면 했다. 그렇게 한 해.
2016년, 안산순례길 참여팀 중 한 팀의 제안으로 어머님 몇 분을 만나게 됐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 어머님들이 이끄는 대로 아이들이 걸었던 길을 걷고 또 걸었다. 어머님들의 이야기를 통해, 세월호라는 거대한 무게에 숨겨져 있던, 아이들 하나하나의 이야기를 모았고, 함께 걸었다. 그렇게 둘째 해.
2017년, 만신창이가 된 나라 탓에 세월호는 묻힌 것 같았다. 잊힐 것만 같았다. 순례길 내내 세월호를 부르짖어 달라고 요청했다. 그 많은 실책 중 하나가 아니라, 세월호 그 자체가 걸음걸음에 담겼으면 했다. 그리고, 7시간을 걸어, 우리는 결국, 바다에 닿았다. 그렇게 셋째 해.
2018년, 이제 다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희망, 세월호의 진실이 금방이라도 밝혀지리라는 기대는 좀처럼 현실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넷째 해.
그리고, 2019년. 무엇이 달라졌을까. 각자 답사를 다녀올 때마다, 마치 히든캐치 게임을 하듯, 안산의 이곳이, 저곳이 작년과, 재작년과 5년 전과 이렇게 저렇게 달라졌다고 이야기를 나눈다. 초지역이나 화랑유원지에서 바라보던, 서울과는 달랐던 안산의 풍경은 어느 새 익숙한 마천루로 바뀌었다. 단원고 교실이 옮겨지고, 분향소가 사라지고, 세월호 가족이 안산을 떠나 이사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슬픔과 애도를 공유하고 품어내던 도시에서 언제부턴가 세월호를 향한 혐오 발언과 행동들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그런데도, 세월호가 침몰하기 직전부터 골든타임을 지나 선체가 완전히 가라앉을 때까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누가 어떤 말을 했는지, 여전히, 가족들은, 우리는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도시를 바꾸어도, 풍경이 바뀌어도, 그것만은 흔들림 없는 사실로 남아있다.
안산순례길이 거듭되면서, 누구보다 이 길이 계속되기를 온 마음으로 지지해주고 응원해주는 분들이 늘었다. 그 중에는 2014년, 진도에서 서울로, 안산에서 청와대로, 그 뙤약볕을 끝도 없이 걸으셨던 어머님, 아버님들도 계신다. 우리의 순례길은 그저 그분들의 아류이자 흉내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안산거리극축제를 떠나 흔들리던 안산순례길이 끊기지 않고 계속되는 것도 온전히 이 분들의 힘이다.
작년 겨울, 을지로를 ‘재생’이라는 명목으로 파괴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된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이 일본 극단 아쿠마노시루시의 동료들이었다. 2013년, 작업을 위해 서울을 찾은 그들과 함께 을지로의 미로 같은 자재상을 끊임없이 맴돌았더랬다. 그 친구들이 그렇게 신나하던 모습은 처음이었다. <반입프로젝트>는 연극을 하며 공사현장에서 알바를 하던 예술가이자 건설 노동자였던 극단 대표 기구치 노리유키의 생활밀착형 기획이었다. 그곳에 있는 모두의 경험과 지혜와 힘을 모으지 않으면, 결코 원하는 곳에 이를 수 없다. 을지로를 지키려는 투쟁의 현장을 지켜보면서, 이 퍼포먼스가 그 모든 투쟁의 과정과도 닮아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304명의 세월호 희생자들과 그 가족들의 마음을 담아, 이제는 세상을 떠난 아쿠마노시루시의 두 동료의 마음을 담아, 세월호를 위한 기억과 걸음은, 혐오를 뚫고 결국 그곳에 ‘반입’될 것이다.



이 글은 ‘안산순례길2019’ 책자에 수록된 원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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